
"음... 그러니까, 매니저?"
"네, 유세프 씨?"
"나한테 이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라고?"
유세프는 제 앞에 내밀어진 옷가지들을 집어 살펴보며 매니저에게 물었다. 한복이였다. 곧 설날이기 때문에 사신지부에서 각 지부마다 사신을 선별해 한복을 입고 촬영을 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고 한다. 매니저는 무안한 듯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어쩔 수 없었다는 투로 대답했다.
"원래 루이랑 리히트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 둘이 정화 하러갔다가 다쳤잖아요. 그래서 부탁을 못하겠더라고요."
"음, 다른 사신들도 있을텐데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유세프는 옷가지들을 책상에 놓은 뒤 매니저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물어봤다. 매니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 다음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다른 사신들에게도 부탁은 해봤지만..."
매니저는 눈을 감고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회상했다. 자신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다며 정중히 거절한 나인부터 보수는 줄거냐고 물어보는 모리, 악마가 무슨 촬영이냐며 화내는 퀸시... 매니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유세프에게 부탁했다.
"이제 부탁할 사람은 유세프 씨 밖에 없어요!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뭐, 안될 건 없지. 매니저 부탁이기도 하니까."
"감사해요, 유세프 씨!!! 촬영 끝나면 캬라멜 마끼야또라도 사드릴게요!"
"그런데 한 명이 더 필요하지 않아? 서류 보니까 사신 두 명이서 촬영한다고 나와있는데."
"앗."
순간 매니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간신히 한 명을 섭외하긴 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한 명 더 섭외하란말인가. 매니저는 벽을 붙잡고 깊이 절규했다. 이제 더 섭외할 사신도 없는데!
"여기서 뭐해요?"
노아가 매니저룸에 들어오며 물었다. 매니저는 노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 해졌다. 매니저는 노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노아...!"
매니저의 행동에 노아는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유세프를 힐끗 쳐다보았다. 유세프는 말없이 노아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
"노아 한복 잘 어울린다!"
"하하, 그런가...?"
고급스러워보이는 보라빛 비단 한복을 차려입고 나온 노아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매니저가 감탄하듯 말했다. 노아는 한복을 입어보는 것이 낯선지 연신 자신의 목덜미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뒤이어 유세프도 푸른빛 한복을 차려입고 나왔다. 노아와는 다른 어울림이였다. 한복을 차려입은 둘을 보니 매니저는 사극 드라마 한 편 찍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촬영을 시작해볼까?"
매니저는 카메라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촬영 초반에는 유세프와 노아 모두 우물쭈물하며 소심하게 포즈를 취하곤 했지만 점점 자신감이 붙었는지 포즈도 열정적으로 취하고 표정도 거의 프로 모델급이였다. 이 둘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매니저는 갑자기 울리는 무전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매니저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자며 유세프와 노아에게 말했고, 매니저는 무전기를 받기 위해 촬영장 밖으로 나왔다.
"매니저, 촬영은 잘 하고 있냥?"
"네, 유세프 씨랑 노아가 열심히 해줘서 다행히 좋은 사진들 많이 건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다냥. 아, 매니저. 방금 공지가 떨어졌는데냥."
냥선배의 말을 전해들은 매니저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14지부는 유일하게 매니저가 있는 지부였고, 게다가 사신지부를 통틀어 홍일점이였기 때문에 함께 촬영을 하라는 공지였다. 어쩔 수 없었기에 매니저는 여성용 한복을 찾아와 갈아입었다. 전신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은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아씨 같았다. 한복을 입어본게 얼마만인가. 동생들과 함께 지낼 때 설날이 되면 한복을 차려입고 떡국도 만들어 먹고, 윷놀이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는데.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촬영 가야지, 촬영!"
매니저는 서둘러 다시 촬영장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세프와 노아는 한복 차림으로 촬영장에 나타난 매니저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매니저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긴급 공지래요. 저도 같이 촬영하라는..."
"한복도 잘 어울리는데, 매니저?"
"그러게요. 잘 어울린다."
"저 놀리는거죠! 빠, 빨리 촬영이나 시작해요!"
매니저와 유세프, 노아는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사진을 찍던 매니저도 함께 촬영을 해야해서 대신 세이 사감이 와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다행히 촬영은 무사히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은... 함께 떡국을 먹는 장면이네요?"
"그런 장면도 있었나요? 어쩌지... 준비된 떡국이 없는데..."
"걱정 마세요. 다른 지부에 남은 떡국이 있을거예요. 잠시 다녀올테니 세 분 쉬고 계세요."
"감사해요, 사감님!"
세이는 다른 지부에 떡국을 구하러 촬영장을 나갔고, 꽤 오랜 시간 촬영으로 지친 매니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아, 힘들다... 유세프 씨랑 노아는 괜찮아요?"
"난 괜찮아. 매니저는 많이 지친 것 같은데 물 마실래?"
"여기 물 있어요, 매니저."
"괜찮아요, 괜찮아! 마지막 장면만 남았으니까 힘냅시다!"
그때였다. 촬영장 어딘가 원혼의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지? 꽤 강한 기운이다.
"매니저? 왜 그래?"
"원혼의 기운이 느껴져요. 근처에 있는 것 같아요."
매니저는 눈을 감고 원혼의 기운을 느꼈다. 갑자기 뒤쪽에서 큰 굉음소리가 들려왔다. 뒤쪽이였다. 유세프와 노아도 각자 무기를 꺼내며 원혼을 경계했다.
"조심해요! 꽤 강한 원혼인 것 같아요!"
"매니저는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어!"
하지만 둘을 남기고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저 둘로는 원혼을 상대하기 힘에 벅찰 것이다. 다른 사신들을 불러오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매니저는 치마자락을 붙잡고 출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른 사신들을 불러올게요!!! 둘 다 조금만 버텨주세요!"
출구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문이 닫히더니 위에서 조명이 떨어졌다. 조금만 더 앞 쪽에 서 있었다면 아마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에 맞아 위험할 뻔 했다.
"매니저!!!"
"괜찮아요?!"
"응...! 난 괜찮아!"
원혼의 짓이였다. 사신들을 직접 불러올 수는 없으니 무전기로 호출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매니저는 무전기를 꺼내 세이와 냥선배에게 원혼이 나타났으니 사신들 몇 명만 촬영장으로 불러달라고 무전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할ㄱ..."
순간 원혼이 매니저에게 다가와 무전기를 박살내버렸다. 원혼이 바로 앞에 있으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 유세프는 그 틈을 타 원혼을 공격했고, 노아는 매니저를 감싸안아 원혼과는 최대한 멀리 떼어놓았다. 원혼과 거리가 멀어지니 두통도 조금 가시는 느낌이였다.
"고마워, 노아."
"매니저가 다치면 안되잖아요."
순간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유세프가 원혼의 공격에 맞은 것이다. 비명을 들은 매니저가 놀라 유세프를 쳐다보니 팔 쪽을 다친 것 같았다. 비단 한복에 붉은 피가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유세프 씨!!!"
"괜찮아. 다행히 살짝 빗겨갔어."
하지만 유세프는 다친 팔을 다른 손으로 붙잡고 있었고 손가락 사이마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아는 매니저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원혼을 공격했다. 노아의 공격을 맞은 원혼이 허둥대고 있을 때, 노아는 서둘러 유세프를 부축해 매니저에게로 데려왔다. 매니저가 유세프의 팔에 난 상처를 살폈다. 상처가 꽤 깊었고, 피도 많이 나고 있었다. 매니저는 급한대로 치마 아랫단을 길게 찢어 유세프의 상처에 붕대처럼 둘러주었다. 그리고 옷 소매로 유세프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유세프 씨, 괜찮아요?"
"난 괜찮아, 매니저."
"일단 다른 사신들이 올 때까지 내가 원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게요."
노아는 원혼에게 다가가 빠른 속도로 공격을 했다. 처음엔 원혼이 속수무책으로 노아에게 당하고 있는 듯 했지만 갑자기 원혼이 노아를 벽 쪽으로 세게 밀쳤고, 노아는 벽에 세게 부딪혀 바닥에 쓰러졌다.
"노아!"
매니저가 쓰러진 노아에게로 향하려고 했을 때 원혼이 매니저를 쳐다봤다.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두통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원혼은 촬영장에 설치되어있는 조명을 하나씩 깨뜨려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쪽을 올려다보니 유세프 바로 위에 조명이 하나 있었다. 저 조명이 깨지거나 떨어진다면 유세프는 심하게 다칠 것이 분명했고, 조명이 없는 곳으로 피하기에도 이미 늦었다. 노아 쪽을 보니 다행히 노아가 쓰러져 있는 곳 주변에는 조명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매니저는 유세프를 꼭 끌어안았다.
"매니저?"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요."
유세프는 눈치챘다. 지금 매니저가 자신을 끌어안은 것은 바로 위에 있는 조명이 깨지거나 떨어질 때 유세프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대신 매니저 본인은 다치게 될 거라는 것을.
"매니저, 위험하니까 이거 놓고 안전한 곳으로 피해."
"안돼요. 유세프 씨가 다쳐요. 자칫 하면 소멸될 수도 있다고요!"
"그렇다고 매니저가 다치는 건...!"
"다 내 탓이에요. 내가 능력이 없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해서라도 당신을 지키는거예요."
유세프를 끌어안은 손이, 유세프를 감싼 팔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원혼의 공격만 잘 피했어도, 팔을 다치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위에 있던 조명의 불이 깜빡거리더니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매니저는 유세프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동시에 두 눈을 꼭 감았다.
"매니저!!!"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세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깨진 유리 파편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 통증도, 느낌도 나지 않았다. 아직 안깨졌나? 깨지는 소리는 분명히 들렸는데. 눈을 떠 위쪽을 보니 조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기이와 에단이 서있었다. 그리고 에단의 바로 앞에는 깨진 조명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아직 늦지 않은 것 같군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 일 날뻔 했습니다? 후후..."
아까 무전기가 망가지기 전에 호출했던 것이 다른 사신들에게 전해졌나보다. 매니저는 긴장이 풀렸는지 유세프를 꽉 안고있던 팔이 스스르 풀리면서 동시에 식은땀이 매니저의 이마에서 툭 떨어졌다.
"매니저, 괜찮아?"
"아, 유세프 씨... 저... 괜찮아요..."
매니저는 노아 쪽을 쳐다봤다. 노아 쪽은 이미 세이가 와서 노아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고 갑작스런 충격에 의식을 잠깐 잃은 것 같네요. 일단 세 분, 의무실로 가서 치료를 받을까요? 에단과 기이는 원혼 정화를 부탁할게요."
"금방 끝내도록 하지."
"맡겨만 주시죠. 후후후!"
-
의무실에 와 치료를 받은 유세프와 노아는 안정을 취할 겸 잠에 들었다. 매니저는 잠을 자고 있는 둘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노아는 크게 다친 곳은 없고, 유세프는 팔 쪽을 조금 크게 다쳐서 신경을 좀 써야할 것 같네요."
"네..."
"자책하지 마세요. 매니저님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매니저인데 둘을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저에게는 원혼 감지 말고는 아무 능력도 없으니까..."
"그래도 조금 더 일찍 알았으니 피해가 크지 않은거겠죠. 매니저님도 놀라셨을텐데 조금 쉬시는게 좋겠네요."
"네, 사감님..."
세이는 볼 일이 아직 남아있다며 의무실로 나갔다. 매니저는 유세프에게 다가가 붕대가 감겨져있는 팔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유세프 씨..."
그리고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노아를 쳐다보았다. 유세프보다 상태가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예 다치지는 않은지라 얼굴에 밴드들이 군데군데 붙어있었고, 입술은 터져 피딱지가 생겨났다.
"미안해, 노아..."
매니저는 조용히 의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정원으로 가 조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 옷 갈아입어야하는데."
유세프와 노아를 치료하느라 정신 없어서 옷 갈아입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응급처치하느라 아랫단을 찢어버려서 너덜너덜해진 치마와 피로 얼룩진 저고리, 그리고 땀 때문에 엉키고 떡진 머리. 거울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몰골이 굉장히 추해보일거라는 것을.
"매니저, 여기서 혼자 뭐해?"
유세프였다. 분명 유세프는 의무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매니저는 유세프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세프 씨, 왜 나와있어요? 빨리 의무실로 가요!"
"매니저가 걱정돼서."
"저는 다친 곳 없어요. 멀쩡해요. 그러니까 유세프 씨는...!"
"안괜찮아보이는데. 지금도 봐. 울고 있잖아."
유세프는 손으로 매니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물이 따뜻한건지 유세프의 손이 따뜻한건지 출처 모를 따뜻함이 매니저에게 느껴졌다.
"많이 놀랐지?"
"저, 저는... 노아랑... 유세프 씨가 잘못될까봐..."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매니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유세프는 그런 매니저를 부드럽게 안아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괜찮으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
매니저가 진정이 되고, 유세프와 매니저는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날 지키려고 그렇게 꽉 안은거였어?"
"그게 최선이였거든요."
"그런데 매니저, 만약 노아 위에도 조명이 있었다면 어떻게 할거였어?"
"예?"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매니저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거지? 무슨 의도로 질문한거지? 유세프는 당황한 매니저가 귀여운지 웃어버렸다.
"나랑 노아 중에 누구한테 갔을거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이랑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유세프의 질문에 대한 답은 매니저 본인도 몰랐다. 정작 그런 상황이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예상조차 되지 않으니까.
"저도 모르죠. 그리고 그런 무서운 예시 들지 마세요! 아직 그 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쫄리는데!"
유세프의 눈가가 축 쳐졌다. 마치 주인에게 혼쭐이나 잔뜩 풀이 죽은 강아지 같았다. 유세프의 주특기였다. 물론 매니저 한정이지만.
"그런 표정 지어도 안돼요. 나도 잘 모르겠는걸 어떻게..."
"한 번만... 날 구할거라고 말해주면 안돼?"
유세프는 유세프 특유의 축 쳐진 눈으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매니저는 애써 유세프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지만 결국 미인계 아닌 미인계에 넘어가버렸다. 노아가 듣는다면 섭섭해할게 분명했다. 이 얘기는 절대로 노아에게 비밀로 해야지. 매니저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래요, 유세프 씨를 구했을거예요. 아마도..."
유세프는 매니저의 대답이 흡족한지 씨익 미소 짓더니 매니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하고도 말랑한 감촉이 피부에 닿자 매니저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유세프 씨!!! 뭐, 뭐, 뭐하는거예요!!!"
저 여우 같은 남자에게 당했습니다. 매니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유세프의 입술이 닿았던 볼을 손으로 감쌌다. 유세프는 그런 매니저의 모습이 퍽 웃긴지 큭큭대며 웃기 바빴다.
"약았어, 진짜..."
"매니저 얼굴이 에단 머리처럼 빨개."
"아, 좀!!!"
매니저는 손으로 유세프의 팔을 쳤다. 유세프는 매니저에게 맞은 팔을 움켜잡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아까 다친 팔인데..."
"반대 팔 쳤거든요? 약았으니까 한 대 더 맞으세요."
"더 때리면 반대 쪽 볼에도 ㅃ..."
매니저는 누가 들을새라 서둘러 두 손으로 유세프의 입을 막았다.
"누가 들으면 어떡하게요! 아니, 그리고 그렇게 갑자기 예고 없이 볼에 막... 그, 그걸 하면..."
유세프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매니저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니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있잖아요...! 아까 유세프 씨가 내 볼에 한거...!"
유세프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더 갸웃거렸다. 이 인간이 진짜!
"뽀뽀요, 뽀뽀!!!"
매니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악 질러버렸고, 정원에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진짜 나빴어."
"화 많이 났어?"
"안나게 생겼어요?! 몰라, 유세프 씨 구하러 갈거라는 말도 취소야, 취소!"
매니저가 벤치에서 일어나 유세프를 등지고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그 때, 유세프도 따라 일어나서 매니저의 손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매니저가 유세프의 품에 안긴 순간 유세프 특유의 향기가 매니저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유세프는 매니저가 자신을 바라보게 한 뒤 두 손으로 매니저의 얼굴을 감싸며 속삭이듯 말했다.
"취소하면, 다시 그 말 해 줄때까지 뽀뽀할건데?"
"네?"
"그런데 볼에만 할거라는 보장은 없어."
유세프는 씨익 웃었다. 매니저의 얼굴은 이미 빨개질대로 빨개졌고, 화끈거렸다. 원래 날씨가 이렇게 더웠나 착각할 정도였다. 지금은 설날을 앞둔 한겨울이였으니까.
"유세프 씨, 그... 뽀뽀... 는... 연인끼리 하는거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난 매니저 사랑하는데. 매니저는 나 안사랑해?"
연애에는 숙맥일 것 같았던 유세프였는데 이렇게 앙큼할 수가 있나. 매니저는 유세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대답을 안하네?"
순간 유세프의 입술이 매니저의 입술에 닿았다. 놀라긴 했지만 뿌리치기 싫었다. 자신을 뿌리치지 않는 매니저를 보자 유세프는 입을 떼고 말했다.
"대답... 안해줄거야?"
"... 사랑해요, 유세프 씨."
둘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 하늘의 노을은 예쁘게 지고 있었다.
-
유세프가 매니저를 뒤따라 의무실을 나갔을 때 노아도 그들을 따라 의무실을 나와 뒤따라갔다. 하지만 그는 후회했다. 뒤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유세프의 질문에 대한 매니저의 대답을 듣지 말았어야 했고, 둘이 무엇을 했는지 보지 말았어야 한다.
"차라리 촬영장에서 다친 게 나였더라면... 지금도 매니저 곁에 있는 게 나였더라면 좋았을텐데."
노아의 입가에는 씁쓸한 쓴 미소가 새겨졌다.